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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지몽 꿈일런가 





00언니는 나랑 2년간 손 발을 맞춰 운영자 일을 멋지게 치뤄낸

역전의 용사,환상의 복식조다.

172cm의 장신에 몸도 살짝 찌운 편이라 웬만한 대장부 감이다.

sbs배 골프대회에서 우승까지 한 전력을 가진데다

시원시원한 성격에 선도 굵고 음식 솜씨도 뛰어나서

대갓집 맏며느리의 풍모를 제대로 갖췄다.

멋모르고 시작했던 집행부에 속하는 운영자 일이

만만하지가 않아 숱한 갈등과 번민을 끌어 안는 자리였다.

전혀 어울릴리 없는 내가 배겨나는데 많이 부대꼈음은 자명하다.



서로들 반목하고 갈등을 벌이며 내홍을 앓을 때,

나는 주로 맨투맨으로 감정에 호소하며 조화를 강조했다면

언니는 때로는 다독이고 때로는 남자들을 호통 쳐가며

용렬함과 비겁함들에 대해 성토하기도 하면서

관계들이 원만해지게 하는 일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모든 부분에 재주가 뛰어났던 그녀는 그 때까지 수기로 기록되던

산행기록이며 활동 내역들을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해서

완전 전산화를 이루어냈으며 나는 그녀의 보조역을 충실히 담당해냈다.

다른 운영자들의 도움도 있었으나 대부분 그녀와 내가 기획하고

행사의 개요를 풀어나가는 식으로 진행을 시켜나갔다.


호접지몽 꿈은 아니겠지 


당당하고 프로 기질이 넘치는 그녀를 다른 사람들은 다 버거워했으나

나는 전적으로 그녀를 인정하고 '언니 잘한다 잘한다,요것도 도와줘,조것도...'

살살 애교 떨면 '어유,요 여우,그래도 그림이가 부탁하니까 해준다'면서

완벽하게 치뤄내 주었다.다소 쌀쌀맞아 회원들에게 오해를 받을라치면

내가 얼른 부드럽게 회원들과 그녀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고......

작년에는 내가 산악회의 총 행사를 담당하는 총 총무가 되어 전면전에 나섰지만

그녀의 든든한 빽이 아니었으면 엄두를 낼 상황이 아니었다.

매월 4대 버스로 진행해야 할만치 호응을 얻은 정기산행이며

환경캠페인,창립산행,시산제,대장100,200,300회 공지기념산행,

매월 산행 집계,개인 기록 관리,마지막 500여명이 참석한 송년회에 이르기까지

매번 300~500 명씩 몰리는 행사에 음식 준비며 식당 예약과 입금,

버스 좌석 배정 등 우린 참 멋지게 치뤄내었다.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산행 공지가 있어

주부들은 주부들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골라 갈 수 있도록 조율하고

회원들간의 여러 소통 상의 난제들을 풀어가면서

억울한 순간도 속상한 일도 많아 울기도 많이 울고 아프기도 했지만

둘 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겠다는 각오로

밤잠을 설쳐가며 일을 치뤄내곤 했었다.

그녀 역시 전업주부가 아닌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경기도 일대의 각급 학교의 영어교실,방과 후 교실 등의 테마 교실

인테리어 설계로 정신없이 바쁜 사람이었고

나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와중에 오전에는 서울로 공부하러 다녔었다.




무슨 돈벌이도 아닌 일에 매일 한결같이 적어도 두 세시간의 할당으로

카페 일을 운영해나가는 우리들은 어떻게 보면 정신병자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어찌 세상에 그저 득실만 따지는 계산법만 존재할까?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이고 하기로 한 바에는

스스로의 이름값을 다하겠다는 철저한 책임감과

우리가 펼쳐주는 마당으로 인해 여러사람들이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 역시 내가 몸담은 조직에 기여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존재감의 성취도 있는 법이다.

그러면서 우린 절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봉사하는 자리라는

인식을 확고히 해두고 멋지게 자리를 뜨자고 약속하고 후회없도록 치러냈다.



호접지몽 되지 않게 열심히 살았다 


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않는다 를 체득화한 셈이었다.

회원들은 그런 우리에게 늘 감사함을 전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 송년회날,개회 팡파레가 울리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정말 후회없이 쏟아 부은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면서

스스로가 대견하고 그 모든 것에 고마워서 감격에 겨웠다.

내가 뭔가를 해준거라는 시혜자의 입장에 있는 줄 알았더니

지나고 보니 직장 생활이 아닌 자유 직종이었던 내가

조직을 이루는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풀어야하는지,

건강한 조직을 이루려면 어떤 것들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지 등의

대중의 속성이나 리더십론을 제대로 배운 셈이 되었다.

적절하게 통제하고 조율하는 법,언어소통과 침묵의 중요성 등

피상적인 이론으로만 접하던 많은 것들을 생생하게 배울 수 있었다.



당연히(잘난 척^^ 양해 바람) 우리 둘 다 계속 운영자로 남아주길 원했으나

둘 다 공부를 핑계로 이 형기 시인의 낙화 한 귀절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를 멋지게 폴폴 날리며 박수 칠 때 떠날 줄 아는 용단으로

권좌(?)에서 미련없이 내려섰다.

혹자는 매일 진치고 있던 운영자 일을 그만두면

정신적 공황까지 겪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도만

우리 둘은 불행하게도 그럴 시간조차 없이 바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

또 자신들에게 처해진 '지금'을 살아내기 위해 바쁘다.

열정을 다해 타인에게 봉사했던 복이 내렸는지

작년에 숙명여대의 평생교육원을 다니며 취득했던 사회복지사 2급 과정 후

한 달 후에 치뤄진 1급 시험에서 때까닥 붙어 버렸다.

그 언니 역시 아들,딸이 다 멋진 직장인으로 우대를 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녀 회사의 인테리어 공사 주문도 폭주하여 정신없이 바쁜 지경이다.

"나는 잘 될 수 밖에 없어. 나 잘 되라고 진심으로 빌어주는 사람이 많거든"

이라며 늘 큰 소리치고 다녔는데 이 말이 진실로 적용된 듯,

정말 나는 순전히 운으로 붙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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